국내 유일 소아조로증 홍원기 가족 이야기

▲ 국내에서 유일하게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는 원기를 위해 가족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기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언제까지인지 몰라도 슬퍼하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겠다는게 아빠 홍성원 목사의 다짐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원기는 오늘도 웃는다.

“난 가끔 ‘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른이 되면 병이 나아져 있겠지?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거, 미래 다 집어치우고 현재를 살아가고 현재를 나아가자.”(홍원기 13세)

국내 유일의 소아조로증 ‘프로제리아 신드롬’(Progeria Syndrome) 환자 홍원기 군(13세). 시간은 원기에게만 남들보다 7배나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원기는 다 자라기도 전에 먼저 늙어버리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원기의 노화는 이미 시작됐다. 올해 13세이지만 키는 1미터 남짓에 몸무게가 14kg을 넘지 않는다. 머리카락도 나지 않는다. 깡마른 팔다리 피부는 노인처럼 얇고 주름이 져 있다. 손톱도 성치 못하다.

지난 11월 12일 남양주 밀알두레학교에서 만난 원기는 5~6세 어린이처럼 작았다. 마주잡은 손은 부서질 듯 연약했다. 관절이 많이 도드라져 있고 걸음걸이도 불편해 보였다. 이미 무릎은 구부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작은 아이의 모습에 80대 노인이 겹쳐보였다.

원기처럼 희귀질환 소아조로증을 앓는 아이는 세계적으로 123명밖에 없다고 알려졌다. 국내에선 원기가 유일하다. 이 병에 걸리면 평균적으로 15세~17세 사이에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원기와 가족들은 원기의 20대를 꿈꾼다.

“저는요. 프로제리아(소아조로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중에 커서 아시아 프로제리아 재단 대표가 될꺼에요”

원기도 자기 병의 심각성을 아는 것 같지만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사랑이 원기를 꿈꾸게 만드는 듯했다.  

개구쟁이 원기의 꿈은 ‘BJ’
외모는 달라도 원기는 여느 10대 아이들과 같은 개구쟁이다. 가면라이더에 빠져 살다가 엄마 눈을 피해가며 핸드폰으로 게임 삼매경에 빠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개인방송 크리에이터 ‘BJ 도티’다. 최근 10대에게 가장 인기있는 직업이 ‘BJ’인데 원기도 게임방송 BJ가 되길 꿈꾸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이 아이에게는 남은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의학보고서에 따르면 내 아들에게는 길어야 3~4년의 시간만 남아있다고 하더라구요. 언젠가 아이가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참 힘들지만 하루하루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합니다.”

원기 아빠 홍성원 목사는 매일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 원기는 괄약근이 약해 가끔 속옷에 실수를 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내가 하기엔 더러우니 아빠가 팬티 빨아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아들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홍 목사는 이런 작은 에피소드도 다 기억한다. 일상에서 원기와 나누는 모든 대화와 일상을 추억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 가장 좋아하던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스파이던 맨 인형과 사이좋게 한 컷(왼쪽 사진)▲지구 반바퀴 떨어진 콜롬비아에 사는 미겔은 동갑내기 원기처럼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다. 서로 '소울메이트'라고 자랑하는 미겔과 원기(오른쪽 위) ▲원기와 2살 어린 동생 수혜(오른쪽 아래) 사진제공=홍성원 목사

5살 아들, 국내 유일의 희귀병 진단
원기는 다섯 살이 되던 2010년 가을에 소아 조로증 진단을 받았다.
“결과를 듣고 주저앉았습니다. 내 아들이 국내 유일의 희귀병 환자라니요. 처음엔 분노와 원망, 좌절감이 컸죠.”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가혹한 운명 앞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원기의 병을 알아냈지만 치료법이 없던 터라 자식을 살리는 길을 찾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었다.

홍 목사는 온갖 정보를 찾아낸 끝에 미국 보스턴에 소아조로증 연구와 치료를 위한 재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임상실험 참가 신청을 했는데 그 후로 부름을 받기까지 4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길이었기에 끝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동생 수혜까지 온 가족이 미국 보스톤으로 갔고, 원기는 철저한 검사를 받은 후 약을 처방받아 돌아왔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 항암제를 재활용해 소아조로증에 임상 중이라던 약을 먹기 시작하자 아이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밥도 먹을 수 없고 피까지 토하는 지경이 됐다.

투약 5일 째 원기가 말했다. “엄마, 나 약 그만 먹을래. 내가 이거 먹는다고 머리가 나는 것도 아니고 오래오래 사는 것도 아니잖아.”

4년의 기다림, 마지막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홍 목사 부부는 단호하게 투약을 중단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원기는 예전처럼 다시 활기를 띄었고 홍 목사는 또 다른 치료법을 찾아나섰다. 사실 원기를 살리기 위해 안 해 본 치료가 없다. 한방치료도 하고, 신유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집회도 찾아다녔지만 다 허사였다. 홍 목사가 배와 등에서 2차례 지방세포를 추출해 줄기세포치료도 해봤다. 최근에는 부산대 팀의 새로운 치료법 연구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원기가 여전히 밝고 상태도 나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 목사는 “참 어두운 상황인데 희한하게 하나님이 원기에게 타고난 기쁨과 밝음을 주셨다. 그래서 견뎌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면서 “언젠가 내 아들이 떠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미칠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가족 곁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눈물 멈추고, 기쁨으로 활짝
원기네 집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여느 집과 다르지 않다. 원기가 푸념을 섞어 쓴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는 짧은 글은 우리네 보통 가정 집의 광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원기네 가족이 일상에서 행복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니다. 치열한 부모의 노력과 눈물의 기도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모를 고민에 밤잠을 못 이루는 부모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지만 지금은 절망을 지나쳐 행복을 붙들고 있다. 이것도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구하지 않아도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꺼라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그 믿음의 원천이다.

“하나님 아니면 누가 이 아이를 살리겠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우리가족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웃으며 살 겁니다.”

그래서 매일 잠자기 전 원기의 등을 긁어주고, 굳어가는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교감하는 가족들은 부모에게 해드릴 법한 일을 어린 자식에게 하면서도 이제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 지금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슬픔으로 낭비하기 아깝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거예요. 힘들 때도 있지만 원기 때문에 웃을 일이 더 많아서 현재에 충실한 지금의 삶이 행복합니다.”

▲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기쁘게 살아가는 원기네 가족/사진제공=홍성원 목사

아시아 프로제리아재단 설립해 섬김도 실천
절망에서 벗어나 현재에 충실하게 살다보니 이 가족에게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홍 목사는 지난해 아시아 프로제리아재단(progeriaresearch.cafe24.com)을 설립하고 사무국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원기네 식구들이 2014년 미국 보스톤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아들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 소년 ‘미겔’을 만났다. 동갑내기 아이들은 피부색은 달라도 생김새가 꼭 닮아 있었고 두 아이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서로 깊이 교감하며 친구가 되었다. 홍 목사는 이 만남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원기와 같은 프로제리아 아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내가 이 모든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영리재단을 설립하게 됐다”고 재단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아시아 지역 프로제리아 아이들을 더 많이 찾아내어 케어하고, 신약 치료제 개발을 추진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 취지에 맞게 지난해 7월 아시아 프로제리아재단에서는 미겔 모자를 한국에 초청해 미겔이 검사도 받고, 제주도 여행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올해 1월에는 필리핀 프로제리아 남매를 초청하기도 했다. 홍 목사는 재단을 통한 활동을 조금씩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홍 목사는 또 지난해 시간을 달리는 소년과 순간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기록 ‘내 새끼손가락 아들’(루아크)을 출간한데 이어, 올해 원기와 함께 쓴 ‘아름다운 시절’(도움토)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예장통합측 목사인 홍 목사는 초교파적으로 간증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다는 홍 목사는 오늘도 ‘그저 함께 있고만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앞으로 원기와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모든 바람은 아이가 살아있어야 가능하다”는 홍 목사의 담담한 말이 가슴을 울린다.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6-201-476393 예금주:홍성원(아시아프로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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