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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교회가 뛴다-원의제일교회

기사승인 [1187호] 2019.06.12  16: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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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울고 웃으며 주민들과 성장”
사회적 기업으로 교회와 지역 화합 도모
커피와 감자로 지역사회 품고 도약 꿈꿔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 중 한 사람인 귀츨라프 선교사가 지금으로부터 187년 전인 1832년 복음을 전했던 원산도. 그러나 오래된 역사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복음화율 10%에 머물고 있는 섬이다. 그만큼 복음의 열매를 맺기 힘든 그곳에서 원의제일교회는 54년 간 뿌리 내리며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다.


2008년 4월 원의제일교회 27대 담임 목회자로 안대정 목사가 부임했다. 부임 당시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 목사였다. 여느 목회자가 그렇듯이 교회 부흥을 위해 열심히 사역했고 지난 11년 간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했다. 이런 경험들은 원의제일교회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교인들은 “목사님이 오셔서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94세의 권사가 원두커피를 내리고 70~80대 권사들이 서빙을 하며 봉사하는 곳. 원의제일교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원의제일교회 전경

54년간 27명이 거쳐간 교회
지금의 원의제일교회는 활기가 넘치는 곳이지만 안대정 목사가 부임하기 전까지는 척박한 섬 교회였다. 1965년 설립 후 27명의 담임 교역자가 바뀔 정도로 일명 정거장 교회였다. 아주 오랫동안 복음의 전통을 지켜왔지만 10%의 낮은 복음화율과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 목회자들의 이동을 부채질 한 것이다.

지금의 원의제일교회는 활기가 넘치는 곳이지만 안대정 목사가 부임하기 전까지는 척박한 섬 교회였다. 1965년 설립 후 27명의 담임 교역자가 바뀔 정도로 일명 정거장 교회였다. 아주 오랫동안 복음의 전통을 지켜왔지만 10%의 낮은 복음화율과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 목회자들의 이동을 부채질 한 것이다.

1975년 부임해 1978년까지 사역했던 신청 목사(대전삼성교회 원로)는 “내가 목회할 때만 해도 호롱불을 켜 놓는 등 매우 열악했다”며 “이런 이유로 목회자들이 자주 바뀌는 교회였다”고 기억했다.

안 목사는 군목제대 후인 2008년 4월 원의제일교회에 부임했다. 당시만 해도 20여 명이 출석하며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균 연령 73세의 높은 연령층이 마음에 걸림돌이었다. 안 목사는 “10년 후면 교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아찔했다”며 “무조건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마을잔치는 OK! 예배참석은 NO!
안대정 목사가 원의제일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결심했던 것은 “무조건 재미있게 목회하자”였다. 이곳에서 목회의 재미를 찾지 못하면 자신도 다른 사역지를 찾게 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정말 교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안대정 목사가 원의제일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결심했던 것은 “무조건 재미있게 목회하자”였다. 이곳에서 목회의 재미를 찾지 못하면 자신도 다른 사역지를 찾게 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정말 교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 3년간은 길거리 전도에 나서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잔치도 했다.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가는 성도들을 붙잡기 위해 식당도 짓고 주민들을 위한 요양원도 세웠다. 목회자에게 언제나 친절했던 주민들의 모습, 교회 행사에 참석해 격려해주는 말을 들으며 안 목사의 목회도 신바람이 났다.

그러나 새신자는 한명도 오지 않았다. 마을잔치 때는 주민 대부분이 와서 먹고 즐기지만 주일 예배 참석은 한사코 사양했다. 안 목사는 “내가 열심히 마을 주민들을 섬기면 교회에 출석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섬이지만 미신도 없고 목회자에게 깍듯한데 이상하리만큼 예배 참석은 사양했다”고 설명했다.

   
▲ 원산도 마을잔치.

원산도는 나의 교구다!
교회 부흥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어 지쳐갈 때 쯤 안 목사는 한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다. 그는 “80세가 훨씬 넘으신 분과 대화 중에 ‘교회 나오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분이 웃으시면서 ‘내가 예전에 그 교회 재정 집사였소’라고 대답하셨다”며 “갑자기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교회 부흥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어 지쳐갈 때 쯤 안 목사는 한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다. 그는 “80세가 훨씬 넘으신 분과 대화 중에 ‘교회 나오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분이 웃으시면서 ‘내가 예전에 그 교회 재정 집사였소’라고 대답하셨다”며 “갑자기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안 목사가 한 번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거나 복음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주민 대부분이 한번씩은 교회를 출석했던 것이다. 그는 “그분과의 대화를 통해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었다”며 “교회 내 성도만 내 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교회 밖 사람들도 모두 우리교회 성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산도 전체를 나의 교구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안 목사의 사역은 교회에 초대하기 위한 전도가 아닌 주민들을 순수하게 섬기는 것에 목적을 두게 되었다. 농한기에는 무조건 마을잔치를 열어 주민들을 섬겼다. 예배 출석은 중요하지 않았다. 교회에 와서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이 소중했다. 처음 안 목사가 마음먹었던 ‘재미있는 목회’도 이뤄지는 듯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 22명이었던 교인들은 조금씩 늘어 40명까지 되었다.

   
▲ 귀츨라프 감자를 함께 심는 교인들.
한과 맛 좀 보세요!
숫자적 부흥이라는 욕심을 내려놓고 주민들을 살피자 그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활동이 안 되는 주민들의 수가 늘어났다. 과거에는 농사도 짓고 조개도 캐서 수입이 있었지만 점점 고령화가 되면서 수입도 많이 줄게 된 것이다. 특히 겨울철 농한기 때는 더욱 심각했다.

그때 안 목사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한과였다. 그는 “2011년에 한 권사님의 가정을 심방했는데 한과를 내주셨다.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셨으니 먹어봤는데 ‘이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 맛이 있고 만드는 방법도 쉬워서 주민들에게 가르쳐 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안 목사는 레시피 전수비로 300만 원을 지원해 주민들과 한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노인들은 재료를 만들고 젊은 층은 찹쌀을 펴서 튀기도록 일을 배분했다. 이게 바로 전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원산도 한과의 시작이었다. 한 달 반 만에 총 7,000만 원 가량을 팔았고 가정 당 500만 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속칭 대박이 난 것이다. 교회 식당에 솥을 걸고 밥도 같이 해먹으면서 똘똘 뭉친 결과였다.

교회가 왜 장사를 합니까?
다음 해 겨울에도 한과를 만들고 팔 생각에 기대감을 갖고 있던 안 목사의 꿈은 오래되지 않아 처참하게 깨지게 된다. 일부 교인들과 주민들이 “교회가 왜 장사를 하느냐”고 반발한 것이다. 일 년 전만 해도 함께 밥도 지어 먹고 찹쌀을 삶고 말렸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일 년 만에 한과 만들기를 거부한 것이다. “교회가 수익사업을 하니 보기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의 반발에는 수익이라는 진짜 이유가 숨어 있었다. 한과 자체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 보니 각 가정에서 각자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연세 드신 노인들은 간단하고 쉬운 것만 하지만 그나마 젊은 층은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수익은 똑같다는 불만도 있었다.

안 목사는 “부임 후 처음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익이 걸려 있으니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모습을 봤다. 인간적으로 많이 서운하고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한과는 지금도 원산도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이니 그나마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한 교회의 한과사업은 시작 일년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 원의제일교회 커피봉사단
커피와 감자에 주목하다
한과 사업이 흐지부지 된 후 안 목사가 눈을 돌린 것은 커피였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던 안 목사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커피를 가르쳤다. 교회 부설 평생교육원의 개념이었다. 성도들을 중심으로 봉사도 다니고 커피를 알리는 ‘점촌실버 바리스타’라는 팀도 만들었다. 다른 마을에서도 커피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일이 많았다. 보령시에 마을사업을 명목으로 강사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내친김에 ‘말이 통하는 커피’라는 의미의 말통커피 브랜드도 만들었다. 2012년 작은 공방으로 시작된 말통커피는 대천 지역에서 입소문을 타며 15호 점까지 지점을 냈다. 안 목사는 “커피를 알려드리면서 활력을 찾은 어르신들이 많다”며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아니고 내가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를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는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3년 전부터 귀츨라프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귀츨라프가 원산도에 남기고 간 것이 성경책과 감자라는 것에 착안해 시작한 것이다. 올해 3년만에 첫 경작을 할 예정인데 원의중학교 동문회에서 모두 사주기로 약속도 받았다. 수익금은 함께 감자를 재배한 주민들과 나눌 계획이다. 

스토리 메이커 되고 싶어
최근 원산도는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태안 영목항에서 원산도로 연결되는 해상교량 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고, 국내 최장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보령해저터널’ 공사도 2021년 완공될 예정이다. 안 목사는 변화될 원산도의 모습을 그리며 스스로 ‘스토리 메이커’가 되고 싶다는 바램을 내비쳤다.

그는 “11년 간 사역했던 원산도, 그리고 지역민들이 평생을 살아온 한적한 섬마을의 모습과 앞으로 변화될 섬의 풍경은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런 변화를 준비하면서 우리 교인들과 주민들도 이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복음전파와 행복한 삶이다. 귀츨라프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복음의 씨앗이 우리 교회를 통해 더 전파될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복음의 이야기를 써가는 스토리 메이커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종언 기자 little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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