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7편

이성훈 목사
다윗은 결코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를 괴롭히던 수 많은 대적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인물이 있다면 바로 사울 왕이었습니다. 다윗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사울은 기회만 있으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꽤 오랫동안 사울로 인해 고통을 당했고, 또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이처럼 피난을 다녀야 했던 다윗의 삶 가운데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1,200m 고지의 엔게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여 그 곳까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엔게디에 피신해 있던 중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사울을 살려 보냅니다. 이윽고 사울의 뒷모습을 향해 다윗은 절을 한 후 잘라가지고 온 사울의 옷자락을 보여 주며 그를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증명합니다.

이 때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삼상 24:17~18)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어서 사울은 다윗의 왕국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과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고백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나의 능력’(1절)이라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여기에서 ‘능력’이라는 말을 번역한 ‘마오즈’는 ‘산성’과 연관이 있는 용어입니다.

이는 다윗이 원수 앞에서 군대가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3절) 하나님이 환난 날에 지키시고 장막 은밀한 곳에서 숨기셨기 때문입니다.(5절) 원수 앞에서 높이셨음을 기억하였기 때문입니다.(6절) 부르짖을 때마다 응답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7절)

당연히 다윗에게 있어서 엔게디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윗을 넘어뜨리려고 했으니, 오히려 넘어지는 이들은 바로 악인들이었습니다.(2절) 이것을 성경은 반복함으로써 넘어지는 이들은 다윗이 아닌 바로 악인들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이토록 보호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결코 왕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구하고 싶었던 것 오직 한 가지를 말하라면 여호와의 전에서 누릴 구원의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 일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본래는 히브리어 어법상 “내가 구하겠습니다 한 가지 일을”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어법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일을 내가 구하겠습니다”하는 식으로 함으로써 그의 간절함을 드러냅니다.

이 뿐 아닙니다. ‘구하겠습니다’ 할 때에 ‘구하겠다’를 번역한 ‘샤알’이라는 말 대신 ‘바카쉬’를 사용하였는데 매우 강력한 뉘앙스를 담았습니다. 심지어 히브리어 단어에 점을 찍어 매우 강력한 의미를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일’에 대해서 단호한 결단을 하며 이를 행동에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구하겠다는 겁니다. 이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겠다는 겁니다.

오직 그것을 일평생 구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살아가는 삶의 자세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다윗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진정한 도움이 되심을 고백하며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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