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나는 일이 없을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지만 들려오는 소식이란 우울하기 그지없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 그 속에 살짝 끼어든 이익집단의 읍소, 무모한 일탈, 정치인들의 자살 소식, 이혼한 남편 살해 이야기, 어린 남매의 비참한 주검 소식, 또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피폐함이다. 왜! 우리 사회는 이다지도 우울한 소식들이 줄을 이을까?

혹자는 건강을 찾겠다며 목숨을 건다. 하체가 튼튼해야 해. 하루 ‘일만 보(一萬步)’가 좋데. 마라톤이 ‘좋다’던데, 허리 병에는 수영이 최고래, 아니 자전거 타기가 더 좋다는데…. 운동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적당하면 좋지만 무리하면 위험하다.

혹자는 명품소유에 인생의 가치를 둔다. 수억 원 짜리 외제차, 4,000만 원짜리 손목시계, 2,000만 원을 웃도는 MTB자전거, 1,500만 원짜리 프랑스제 S색소폰 등 명품에 홀린 이가 적지 않다. 그것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한 프로사진가는 말했다. “아마추어일수록 값나가는 기기에 더욱 집착한다”라고. 취미일수록 즐겨야 행복하다.

어떤 이는 학벌에 심취해 산다. 부천에 살 때, 한 사장님은 입만 열면 자기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자랑했다. 자존감과 자긍심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의 일이란 ‘부동산 사무실’에서 동네 친구들과 하는 ‘그림 공부’(?)가 전부였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는데, 4, 5개월 정도 지나면 또 나타나곤 했다. 이유인즉슨 심심해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 ‘그림 공부하고 싶어서’. 이는 중독 현상이다. 즐김이 지나쳐 중독되면 행복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자녀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며 과도한 교육비를 쏟아붓는다. 부부의 행복은 뒤로 미룬 채, 기러기 부부를 자처한다. 누구를 위한 인생인지, 행복할 수가 없다. 어떤 분은 사업 성공이 인생 목표라며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법을 어기는 것쯤은 아랑곳없다. 기업윤리는 저버렸으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우리 집 아래가 복권방이다. 문 앞에는 1등 2번, 2등 3번 ‘당첨자의 집’이라고 자랑 문구도 있다. 어느 날, 드나드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모두가 심각한 얼굴뿐, 웃음 띤 얼굴은 거의 없다. 이는 우리 곁에 지천인 세 잎 클로버(꽃말-행복)는 짓밟고 ‘행운’이란 의미의 네 잎 클로버만을 찾는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다. 돈벼락도 좋으니 한번 맞고 보자는 태도다.

우리 사회는 행복을 모토로 가야 한다. 건강 본위의 삶도, 명품 우선의 삶도, 과도한 교육비를 쏟아붓는 자녀 사랑도, 복권에 대한 유혹도 한결같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사례들은 중독성이 문제다. 처음엔 장난처럼 보여도 나중엔 헤어 나오기 어려워 인생을 망가뜨린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보면, 내가 오르는 막대기의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애벌레는 다른 친구들을 짓밟으며(?) 치고 올라간다. 인생에서 쏠림 현상이다. 복원력의 상실이다. 이렇게 길러진 자녀가 과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세상을 살아가려 할까.

신바람 나는 일은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신바람은 정정당당함에서 나온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어제 은퇴 목사님들을 모시고 한식 뷔페에서 위로 행사를 열었다. 한평생 목회에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 은퇴한 분들은 이제 지팡이를 짚고 눈도 침침해졌다. 하지만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개척교회 목사가 식사를 기꺼이 대접했으니 더욱 그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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